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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힘, 앤 말럼

Anne Mah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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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아버지가 도박 중독인 것을 알게 된 말럼은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실망스러운 일로 탈선하는 대신 달리기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홈리스를 위한 비영리 러닝 클럽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을 강연에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강연을 통해 신중한 선택의 중요성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는 노스다코타 비즈마크에서 자랐는데 상당히 대단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운동을 잘했고 학교에서 우수했으며 친구가 많았고 놀이터에서 따라다니는 남자아이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살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을 너무 잘 알다 못해 제 침대 밑에는 어른이 되면 제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상자가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새하얀 울타리가 둘러진 크고 하얀 집의 그림, 아이들과 남편이 어떤 모습일지 그린 그림 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생이 그렇게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12살에게 있어서 인생은 쉬웠으니까요.

16살에 저는 현실의 처절함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직장에서 일찍 돌아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저와 남동생, 언니에게 잠시 집을 비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저는 즉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집을 나갔고, 제가 제일 먼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집에 계시지 않았고 아버지는 암울하고 당혹한 듯한 모습으로 위층에 앉아 있었는데, 지난 16년간 알던 영웅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가 도박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16살이었으므로 중독에 대해 잘 몰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박이 아버지의 첫 중독 대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약물과 알코올 중독 회복을 이미 거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이러한 문제들과 고투를 벌이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어머니는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속임수, 거짓말, 부정행위, 무책임 등 제가 아버지를 묘사할 때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이 요소들과 씨름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이 일을 또 겪을 수 없었기에, 그날 아버지를 집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아버지와 정말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이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아버지는 제 최고의 팬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네 시간 동안이나 차를 몰아 제 농구경기를 보러 오고는 하셨는데, 제가 상당히 괜찮은 점프 슛을 할 줄 알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해서 경기를 보러 올 정도로 훌륭하지는 않았습니다. 16살 아이였던 저는 아버지가 목숨보다 소중했기에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그 후 3년간 저는 어머니와 상당히 끔찍한 관계로 지냈습니다. 제게 있어서 어머니는 제 인생을 망친 존재였고, 부모님의 별거는 침대 밑 상자 안에 들어있지 않았던 해프닝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왜 카지노에 계속 가야하고 멈출 수 없었는지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그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카지노에 갈 때마다 돈을 따면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고 제게 설명하려 애썼습니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중독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곧 제가 그 속임수, 거짓말, 부정행위, 무책임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중독자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저는 내면에 쌓인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너지를 처리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스포츠와 운동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가 주는 멋진 교훈에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달리기는 인생에 있어서 언제나 한 번에 한 단계씩만 나아갈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계속 열심히 해나가지 않고1마일이나 5마일을 한 번에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 언덕이나 움푹 패인 곳이 나오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미 몇 마일 뛰었으니 이제 돌아가야지.라고 할 수도, 왼쪽으로 가야지.오른쪽으로 가야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변명거리를 찾는 것은 무척 쉽습니다. 아니면 그냥 열심히 가보면 어떨까?밀고 나가 언덕을 오르면?계속 멀리, 열심히 가다 보면 더 평탄하고 뛰기 좋은 멋진 길이 나올 거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을 했습니다.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침대 밑 상자 안에 있던 인생을 이룰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선택에 희생될 필요가 없습니다. 반항할 필요도 없습니다. 약물이나 알코올에 의존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결정이 제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 진학했고 학위를 2개 받으며 조기 졸업했습니다. 대출을 받아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고 대학원도 조기 졸업했습니다. 저는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저는 행복해져야만 했고 그 어떤 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상자 속의 그 곳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24세가 되고 보니 필라델피아의 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24세부터 26세까지 저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 그저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인생의 과정을 통과했고, 오로지 상자 속의 그곳에 도달하기만 하면 행복해지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이런 것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난 아이를 원하는 것 같지 않아.결혼을 하고 싶은지도 확실히 모르겠어.교외에 큰 집도 원하는 것 같지 않아.나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원하는 것 같아.그나저나 난 여기에서 뭐하고 있지?

그래서 저는 거의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들을 들춰보며 인생에서 무엇을 할지 열심히 알아내려 했습니다. 누군가가 그냥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는 참으로 외로운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좌절하다 못해 결국 직장까지 그만두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면 저를 안심시키는 안전망이 사라져서 억지로라도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보니, 제 자신에 대해 아는 한 가지는 러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몇 차례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계절과 요일 관계없이 매일 아침 5시 30분에 달렸습니다. 제게 달리라고 말하거나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저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저는 뛰고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다고, 제 자신을 제어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자율적이고 강인하며 아무도 저를 이길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2년간 매일 아침마다 달리며 항상 노숙자 쉼터를 지났는데, 그들은 노숙자였고 저는 노숙자와 공통점이 없으니 그곳 사람들에 대해 그 이상 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헤드폰을 낀 채 맞은편 길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2007년 5월부터 그곳 노숙자 한 무리가 제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노스다코타 출신이므로, 상대가 손을 흔들면 저도 함께 손을 흔듭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재미있는 관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왜 노숙자들 옆을 달리며 그들을 그냥 두고 가지?왜 나는 러너가 되었고 그들은 길거리 노숙자이지? 저는 그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중독자였던 아버지를 많이 생각나게 했고, 그 점이 노숙자와 제가 가진 연결고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재미있고 신랄했으며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면이 사람을 끌어당기고는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 쉼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러닝클럽을 시작하겠다는 새로운 생각을 하며 설렜습니다. 그래서 쉼터의 책임자를 만났는데, 그는 노숙자들이 뛰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대한 좋게 이야기하려 애썼습니다. 저는 “그냥 노숙자들에게 부탁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일주일에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3번을 올게요. 신발과 옷은 가져오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희망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씀드렸듯이 직장을 그만두었기에 다른 곳에 면접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대기업 컴캐스트(Comcast)에서 십만 달러 연봉과 당시에는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던 스톡옵션, 그리고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공무 부서의 일자리를 제안 받았습니다. 26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어릴 때 원했던 삶을 생각하면, 이것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5주간 유예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숙자 러닝클럽을 준비하여 시작하고 사람들을 충분히 모아 제가 없어도 계속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제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는 노숙자 쉼터의 책임자를 졸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9명의 이름과 신발 크기가 적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메일에는 “좋아요, 앤, 다음은 뭐지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엄청 흥분했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해 신발을 기부 받고 티셔츠와 반바지도 구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들을 만나러 가며 서약서도 준비했습니다. 서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러닝클럽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몇 가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제 시간에 나오고 주당 2일이 아닌 3일을 참여해야 한다. 또한 긍정적인 자세로 임하며 팀 동료들을 도와야 한다.”

그날 밤 저는 참가자들에게 전할 신발과 옷, 서약서를 들고 쉼터로 갔습니다. 참가자 9명 중 8명은 아프리카계였고 한 명은 백인이었는데, 모두 팔짱을 낀 채 이 젊은 금발머리 백인 아가씨가 여기서 뭐하나 궁금해하며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여기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며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즉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달리기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등을 털어 놓았습니다. 저는 2년간 누구와도 연결된 느낌을 갖지 못하며 사람들을 사귀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서야 진정으로 제 사람들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느낌은 바로 찾아왔고, 동시에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서약서를 보여주자, 그들은 모두 저를 보다가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분명 평생에 이런 상황이 아예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매우 오래 전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 제가 그들에게 우수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세요? 여러분은 노숙자예요. 이곳 쉼터에서 사는 것은 분명 힘들 거예요. 매주 3일을 해내기란 불가능할 거예요. 시간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할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서약서에 적힌 규칙에 절충은 없었습니다. 그날 9명이 모두 서약서에 서명했고, 저 역시 서명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달리기는 2007년 7월 3일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퍼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언론에 연락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언론에 연락하여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말했는데, 기자들은 한결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앤, 노숙자들은 달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노숙자를 위한 기금을 모은다는 말이지요?” 저는 “아니요, 아니요. 노숙자 쉼터에서 9명이 달리기를 한다고요.”라고 했지만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노숙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들은 게으르고, 열심히 하려 하지 않고, 잘못을 저질렀으며, 위험하고, 중독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달리는 사람들, 특히 아침 5시 30분에 달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고, 포부가 있고, 전념하며 집중을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노숙자이면서 달리는 사람일 수 있을까요?

7월 3일 아침,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왜 이 노숙자들이 달리지?”라는 맹렬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쉼터에 왔습니다. 그리고 마이크, 대런, 조 등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었습니다. 이들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요.” “저는 50살이어서 몸 관리를 할 때라서요.” “군대에서 달리기를 하곤 했는데 꽤 잘 했거든요.” “아직도 몸이 쓸 만 한지 알고 싶어서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기자들은 이에 감화되어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TV에 나오기 시작했고, 러닝클럽의 인원은 늘어나 20~25명이 되었습니다. 이후 2주동안 이들을 관찰하며 저는 두 가지 요소를 발견하였고,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제가 제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이들이 매일, 그리고 제 시각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통해 힘들게 배운 사실은 우리가 바뀌길 바란다고 해서 사람들을, 특히 다 큰 성인을 억지로 바꿀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 달리기가 끝나고 가져간 종이에 그들이 달린 거리를 적을 때의 반응입니다. 왼쪽에는 참가자 이름이, 위에는 거리가 적혀 있고 저는 이름 옆에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마킹펜을 가져가고는 했습니다. 그러면 참가자들이 제 어깨 뒤에서 밀쳐가며 그들이 해낸 결과를 표시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들이나 저나, 그곳의 모두가 같은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인정받고, 사랑 받고, 관심 받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정에서, 직장에서, 사적인 관계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얻지 못하면 그들을 떠나고, 다른 곳에서 똑같은 것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이 만약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를 러너, 운동선수, 열심히 집중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 보지 못하면 남은 평생 동안 노숙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격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가치가 없는 노숙자로 보는 정체성을, 그들의 인생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의 탓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그들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전세계 노숙자 쉼터에 있는 다른 사람들, 러닝클럽 같은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26세이고 사회경험이 없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을지 알지 못하기에 세상이 유리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호하던 제 삶의 모든 것들은 분명해졌습니다. 10년간 저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했고 왜 아버지가 도박 중독자가 되고 부모님이 별거를 해야 했는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고통을 사람들을 돕는 데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것만큼 완벽한 회복 스토리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26세 여성으로서 흔히 할 법한 일을 했습니다.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컴캐스트 일을 안하려고요. 제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에요.”라며 설명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철 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하겠다는 게 무슨 의미이니? 일로 말이니? 어떻게 먹고 살래?” 저는 “기금을 모을 거예요. 비영리로 만들고 직원을 고용하고 프로그램도 만들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들은 중에 가장 바보 같은 생각이구나.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좋아, 앤. 하지만 거기까지야.”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제 안전이 걱정된 아버지는 이 생각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저는 멘토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반응은 모두 같았습니다. “돈은 얼마나 모아 두었니?” 전혀 없었습니다. “비영리단체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고?” 없었습니다. “노숙자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있니?” 없었지요. “앤, 정말 좋은 생각일까?” 저는 제 인생의 어른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음을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지지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순간임을 알았습니다.

질문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모두의 말이 맞으면 어떻게 하지?’ 지나치게 낙천적이고 실없고 멍청한 생각이고 철이 덜 든 것이라면 어떻게 하지? 아마 그분들 말이 맞을 거야. 그냥 직장을 잡고 안정적으로 살면서 가능할 때 그들을 돕는 거지. 나라면 가능해 지기만 하면 언제든 그들을 도울 거니까, 그렇지?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저는 남은 평생 동안 그 9명의 노숙자들이, 그리고 운동을 통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운동을 통해서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돕자. 이 점에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둘째, 모두의 말이 맞고, 그리고 내가 직장을 택하지 않고 모든시간과 에너지와 열정을 쏟았는데 그들 모두가 떠나버리면? 참신함이 시들해지고 언론도 사라지고 분위기가 식으면, 그래서 추운 1월 아침 5시 30분에 아무도 더 이상 달리고 싶어하지 않으면? 직장도 없이 상처만 받으면? 저는 똑똑한 사람이므로 다른 일을 구할 수 있고 상처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정말 되면?내 말이 맞으면어떻게 하지?왜냐하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거기에 현실을 입혔을 때 그렇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보다 쉽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컴캐스트에 전화해서 기회를 준 것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후 제 주변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많이 이루고 성장하고 배우고 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수를 바로잡고 다른 실수를 잔뜩 하고, 또 그 실수들을 다시 바로잡았습니다. 이후 6년 반에 걸쳐 우리는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춘 비영리재단으로서 예산은 7백만 달러, 직원은 50 여명이 되었습니다. 12개 도시에서 노숙자 쉼터의 사람들을 자립 생활, 직업 훈련, 고용, 주택 공급 상태로 바꾸는 성공률이 46%에 달했으며, 이 모든 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돕고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이룬 것이었습니다.

6년 반이 지나자, 다시 다른 것을 시도할 때가 왔습니다. 다른 것을 만들고 전혀 다른 도전을 해볼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할 부분을 했고 이제 바통을 넘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피트니스 회사와 유사한 영리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같은 일을 하여, 사람들을 도울 만한 것을 만들고 여성이 자기자신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고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다른 것으로 넘어가 새로운 것을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따금 우리는 직장에서, 관계에서, 자신의 머릿속에서 꼼짝없이 갇힌 느낌으로 그저 같은 일만을 반복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집니다. 더 이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관계를 지속하기도 하고, 다른 것에 도전해보기 두렵다는 이유로 직장을 계속 다니기도 합니다.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지금이 별로 행복하지 않지만 미지의 것은 그 이상으로 두려우니까요.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고통, 슬픔, 상실, 괴로움 등 실망스러운 것들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인생에서 배운 것은 제가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어떤 자세로 살고,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말입니다. 아버지가 중독자이고 부모님이 별거하는 것과 같은 그런 일이 우리에게 닥칠 때 우리도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고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과 제어할 수 없으니 그저 흘려 보내야 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포용하기를 바랍니다.

Mahlum

앤 말럼(Anne Mahlum) 은 2013년 설립 후 빠르게 성장 중인 피트니스 업체 Solidcore의 CEO 겸 오너입니다. 그녀는 2007년에 비영리 단체 Back on My Feet을 설립해 CEO를 맡기도 했습니다. 말럼은 ABC 월드뉴스의 이 주의 인물, CNN 영웅, 이 주의 뉴요커,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D.C. 비즈니스 저널이 선정한 40세 이하 TOP 40인에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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